일주일 전, 의식 상승 후 치유적 하강기에 경험하는 허무감, 죽음의 유혹에 대해 자각했다.
당연히 이게 끝이 아니다.
지난 주말 아카데미 수업에서 카루나 레이키 마스터 동조를 4회 연속 했다.
참여자들이 깊이있고 진지하게 치유하기 때문에 동조 중의 치유 증상이나 메시지도 심층을 향했다.
이 경험은 당연히 나의 심층도 건드린다.
주말에 몸 상태가 여의치 않아 누워지냈다.
감정도 끌려내려갔다.
인간으로서, 힐러로서 내 자신의 불완전성을 처절히 인정했다.
몸을 일으켜 치유 일기를 적으며 조언과 위로를 청했다.
"너의 울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며, 너는 완벽할 정도로 완벽하다"고 했다.
불완전과 더불어 완벽하다,는 뜻을 숙고했다.
음식을 챙겨먹고 식습관을 되돌아보았다.
오늘 일정에 맞추어 몸이 돌아오는 걸 보니 치유 증상이었을 것이다.
어김없이 와있는 업무 관련 메시지들이 정신을 일깨웠다.
새벽에 다시 "지금 이 순간, 그리고 오늘을 위한 조언을 청한다"고 적었다.
명상에 들었고, 죽음의 유혹이라는 장막에 대해 숙고했다.
삶에 대한 거부감, 부담감이 그 실체다.
성장기와 성인기에 내내 시달리던, 심층의 감정.
비관주의, 다른 사람을 내가 다치게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내 존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같은 불안, 생존 스트레스.
지금의 내 현실과는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치유적 하강기에 경험하는 감정체, 심리적 현실이 생생하게 지금의 나를 사로잡는다.
죽음의 유혹이라는 미묘한 장막을 뒤집어 쓴 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는 자각이 몸의 에너지 코드를 재활성화 시켰다.
서서히 몸이 풀려나가자, 독특하고 예리한 빛이 쏟아져들어왔다.
그 빛줄기를 몸에 통합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생각한다.
더 깊은 심층에서 나와 정면승부 하는 시간이구나.
이어지는 숙고.
힐러는 나의 정체성이 될 수 없다.
그 역할은 어찌 됐든 시선이 일정 부분 외부로 향한다.
겉으로 드러내는 과정이고 나를 비추는 거울일 뿐, 이것을 정체성이라 부를 수는 없겠다.
이 지점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이번 하강기의 소득이겠다.
나의 정체성은 영성가다.
안으로 향해서 빛을 캐내는 광부.
빛과 그림자의 일렁임.
그러고 보니 안으로, 안으로 향하는 이 성향이야말로 나의 원동력이겠다.
그 이름을 치유라 붙이든 죽음의 유혹이라 붙이든.
이것은 귀향 본능이기도 하다.
내 영혼의 본향을 향한.
평생 멈추지 않았던 내적 움직임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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