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돌아가지 않는 가정 출신"이라는 개념이 치유가에게 중요한 이유는 단지 부모나 형제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당사자의 삶 자체도 내내 잘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지식이나 영적 가방끈, 학벌, 지위, 돈의 유무, 결혼 여부와 무관하다. 일상 안에 위태롭게 삐걱대는 요소가 만성적으로 존재하면서, 노력을 하면 할수록 증폭되고 악화되어간다.
물론 이 중의 무언가를 꾸준히 해서 성취한 사람은 훈련된 자질을 갖고 있으므로 치유 과정에서 약간 유리하다. 그러나 삶 전체의 패턴은 비슷하다.
이 분들은 가족의 주요 기능들이 작동할 때 구성원간에 어떤 식으로 관계 맺고 일상이 돌아가는지 경험하지 못했다. 성인기에도 주변에 좋은 본보기를 두고 꾸준히 배운 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인간 관계의 기본 노하우가 결여되어 있거나 한 방향으로 고착된 채 왜곡되어 있다.
관계맺는 법은 핵심적인 삶의 기술art of living이므로 이것이 조화롭지 않은 삶은 흉내내기나 무리한 노력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한 사람을 향해 혹은 어떤 목표agenda를 향해 강박적으로 집착하고, 대상을 바꿔가면서 심리적으로 떠돈다. 인생자체가 말 그대로 부평초처럼 흘러다니는 것이다.
또한 감정을 다루는 기술이 제한되어 있다. 겉으로 보면 예민하고 풍부한 것 같지만 자기파괴적인 싸이클을 격렬하게 맴돌 뿐, 다양한 느낌들을 잘 알지 못한다. 감정은 자신을 이해하고 대인 관계를 끌어가는 레이다 같은 것이다.
인간 관계가 불안정하다. 누군가 한 사람에게 특별한 의미를 몽땅 부여해서 집착하고, 비슷한 패턴을 가진 사람을 돕는다는 명목하에 사실상 끌려다니며, 타인을 이용하는 포식자에게 희생 당한다.
심한 경우 주변에 좋은 사람이 남아 있지 않다. 감정을 다루고 경계선 설정하는 것이 낯설므로 스스로 포기하거나 상대를 상처주는 일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삶의 방식을 익히기 어려워하고 내면의 저항이 심하다. 인정 욕구와 포기 사이에서 엎치락 뒤치락 하는 주기가 짧고 변명에 능하며 주변 탓을 많이 한다. 결국 쉽사리 주저 앉는다.
그래서 힐러의 역할이 중요하고, 힐러가 과정 전체를 충분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때 힐러가 클라이언트와 비슷한 인생 여정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훨씬 더 효과적으로 치유할 수 있다. 상대를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고 분별없는 인내심을 발휘하기가 조금은 더 용이할 것이다.
특히 힐러는 자신의 트라우마와 아킬레스 건을 치유하고 넘어서본 사람이라야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의 상처가 뒤엉킨 채 상호종속co-dependency에 빠져든다.
치유 과정 내내 여러 가지 치유법과 지혜, 사랑의 조화가 필요하지만 발전 단계에 따라 약간씩 핵심 주제가 달라진다. 내 경험으로는 효과적인 치유 과정을 경험한다는 전제 하에, 각 단계별로 1~2년씩 걸린다.
1. 초기
1) 경청과 조건 없는 지지
이 분들은 누군가의 온전한 관심과 존중의 대상이 되어본 경험이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오랜 시간 부정적인 관계 속에 외롭게 방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살아온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준다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시작된다.
조건 없는 지지가 치유 테크닉인 셈이다. 이를 통해 힐러와 일차적인 신뢰 관계를 형성할 수 있고, 그 힘으로 치유를 지속할 수 있다.
지지한다는 것이 "잘 될 거야"라고 희망을 불어넣거나 클라이언트의 선택이 모두 옳다고 비위를 맞춘다는 뜻이 아니다. 그렇게 하면 힐러를 신뢰하지 않는다.
분별이나 충고를 보류하고, 그가 느끼는 감정에 공감해준다는 뜻에 가깝다.
2) 학습과 실습
치유 이론과 테크닉, 영적 원리 등을 체계적으로 배우게 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도구를 습득하는 과정이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초 인문교양의 역할도 된다.
문제는 요즘 사람들이 이런 지식을 대부분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러 영역에서 이러한 지식들이 대중화되어 있고, 본인 삶의 고통을 해결하려 이런저런 노력을 오랫동안 해온 까닭이다. 그래서 중요한 원리들을 시시하게 여긴다.
체화하는 재미, 즉 건강이나 삶이 실제적으로 바뀌는 효과를 실감시켜 주어야 한다. 초기부터 의미를 발견하고 과정 내내 점진적으로 심화되는 경험을 유도해주는 힐러의 역량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냉소적인 속마음으로 제자리를 맴돌거나 또다른 선생을 찾아 영적 쇼핑을 떠나게 될 것이다.
2. 중기
1) 내면 아이- 감정체 치유하기
심리적 구조를 깊이 해명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스스로의 책임하에 감정의 구조, 사고 방식의 구조를 인식하고 가다듬는 과정으로 "영혼의 어두운 밤"이라고 부를 만큼 길고 낯설고 고통스럽다.
이 작업을 생략하거나 대충 때우면 삶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다.
자아의 그림자 측면에 대한 작업은 영적 여정에서도 필수적인 기초 과정이다. 수많은 영적 마스터들이 내내 성장을 지속하지 못하고 무너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은 영적 성장 자체가 자아의 치유 과정과 동전의 앞뒷면이다.
2) 경계선 설정 연습하기
4바디 시스템(육체, 감정, 정신, 정체성-영성)에 걸쳐 자기다움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유지하는 연습이다. 이를 통해 자신을 있는 그대로 허용하고 존중하며 자기 확신의 힘을 키운다.
또한 타인과 관계맺을 때 다양한 관계와 상황을 다루는 훈련의 과정이기도 하다.
3. 후기
1) 삶을 책임지는 연습
복합적으로 잘 돌아가지 않는 가정multi-dysfunctional family 출신의 비극적인 점 중에 하나는, 누구도 그의 삶을 아끼고 책임져 준 적이 없기 때문에 당사자 또한 책임지는 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자신을 방치할 뿐더러, 남을 이용하고 폐를 끼치는 일에 대해서도 둔감해진다. 마음 깊숙한 곳에는 죄책감과 열등감이 깊지만, 겉으로는 상대방에게 문제가 많기 때문이라고 우월감을 내보이며 컨트롤 하려고 든다.
가족이나 직장 등 일상 환경에서 성실하게 책임지는 법을 하나하나 알려주고 익히게 해야 한다.
2) 일하게 하라
삶에 책임지는 능력은 궁극적으로 돈을 대하는 태도에 드러난다. 돈만 있으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상상하지만,깊은 무의식 속에서는 돈을 경멸한다. 돈을 버는 행위에 들어 있는 복합적인 의미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직장 생활이나 사업을 하는 데 필요한 훈련과 노력, 인간 관계의 깊은 성숙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는 피상적인 것들만 보고 섣부른 판단을 내린다.
스스로 벌어 책임지거나 돈 벌어오는 사람에 대해 관계 맺는 법을 훈련하지 않으면, 영원히 동정과 구호의 대상으로 머무르거나 "선한 희생자"라는 피해 의식을 면치 못한다.
내 경우는 치유를 배우는 비용을 스스로 벌게 하는 데서부터 훈련을 시작한다.
<참조>
"탈 성매매 여성들"을 위하여 오랫동안 일해오신 최정은 님의 인터뷰에서 내 문제의식과 통하는 부분을 많이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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