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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천천히 걸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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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일로의 치유와 성장 342

오늘의 자각 - 기쁨이 슬픔이 기쁨이

감정은 자각에 이르는 레이다. 새벽에 눈 뜰 때의 감정 - 미세하나 명확히 허무한 슬픔이었다. 의식의 파동으로는 좀 무겁다. 몸을 일으키기 전 생각해본다. 어제의 일과와 연관되어 있다. 나는 또다른 평범한 하루를 살았을 뿐이다. 나쁠 것도 없고, 어찌 보면 기쁘고 축하해 마땅한. 다양한 층위에서 성장하는 사람들의 진지한 걸음과 의식의 도약이 실시간으로 눈에 훤한. 그렇다면 어쩐 일인가. 나는 텅 빈 마음으로 헤치고 나아간다. 비어있지 않으면 헤치고 나아가는 모든 걸음이 상처가 된다. 나의 나아감이 타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 의미를 비운다. 의미 자체를 모름, 불분명함으로 남겨둔다.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내 마음이다. 내가 무엇을 위해 그리 하는가. 그게 비어 있다. 비어 있음을 나의 낮은 의식l..

오늘의 기도 - 전환의 속도

주님, 명료함과 기쁨과 평화, 힘을 느낍니다. 다시 돌아온 그것이지만 새로운 것입니다. 불편함이란 언제나 내가 변화하고 도약해야 할 때일 뿐입니다. 그러면 외부 현실을 변화시킬 힘과 지혜는 저절로 주어집니다.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밖에서 펼쳐질 뿐입니다. 상위자아, 높은 차원의 근원(에너지/의식)과 연결되는 것은 초석이자 대전제입니다. 나는 빠르게 확장되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 자신이 누구보다 빠르게 자각하고 전환, 성장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Too much love will kill you

4바디 힐링을 마스터 수준으로 하는 직업적 힐러를 100명쯤 길러내겠다... 이게 사람의 목표라니 미친 짓이다. 오늘 어떤 프로젝트 팀 미팅을 준비하며 이렇게 톡을 보냈다. "저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한없이 기초적인 일들을 한없이 진 빼가며 하는 중노동이예요. 오래 공들여 길러온 힐러들이 한순간의 자만심에 빠져 한두 걸음 멋대로 내딛다가 엉망으로 만드는 모습을 보는 게 고통스러워요. 그 한 걸음이 자신들의 생존과 성취를 한 순간에 무너뜨린다는 것도 모르고 멋대로 지뢰밭을 내딛고, 폭탄이 터진 뒤에야 겁에 질리고, 뭔가를 숨기고 싶고, 엉뚱한 데서 길을 찾으며 잘난 척하고… 비단 두 사람의 일이겠습니까 이런 시행착오와 실패, 성공을 모두 껴안고 가겠다는 게 내 선택입니다. 전체적으로 큰 그림에서는 결코 실..

의식주 小考 - 식

- 일반적으로 좋은 음식은 자신의 문화권에서 먹고 자란 음식people's food이다. 무엇이 수퍼 푸드다, 하며 특정 식재료를 흥행몰이 하는 것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과 그 배후에 어떤 의도가 있기 십상이다. 반대도 마찬가지. 무엇이 해롭다, 하는 데 겁을 먹으면 그 자체의 해로움보다 본인의 생각과 감정이 불러일으키는 파괴적인 에너지가 훨씬 큰 해로움을 훨씬 빠른 속도로 불러일으킨다. 예를 들어 "유기농이 좋다"는 생각에 꽂혀서 가족들의 식생활을 완전히 컨트롤 하려는 강박 관념은 해롭다. 대체로 유기농, 가끔은 적당히 느슨한 편이 사람 심리와 몸의 적응력에 좋다. - 식재료가 나에게 오기까지 이동거리가 짧을수록 에너지가 덜 손실된다. 누가 어떻게 키우고 운송하고 판매했느냐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 요..

의식주 小考 - 옷

의식주 역시 내 에너지/의식 상태와 조응한다 - 예전에는 어두운 기본 색과 단조로운 디자인을 입었다. 간혹 파격적인 색상과 디자인이 끼어있었지만, 정신줄 놓은 자유로운 시기로 국한된다. 지금은 색깔과 문양이 다양하고 채도, 명도가 매우 높은 옷들이 많다. - 버리지 않고 오래 두고 입을 옷에 대한 규정이 달라졌다. 전에는 비싼 옷, 언젠가 필요할텐데 싶은 옷들을 옷장 구석에 걸어두었다. 요즘은 옷에 묻어있는 내 감정을 위주로 선택한다. 슬픔, 회한, 미련, 수고로움이 묻어 있는 옷들은 에너지가 축축 쳐지기 때문에 그냥 버린다. - 한국에서 입던 옷들은 여기 남부 캘리포니아에서는 입을 수가 없다. 하던 일occasion의 차이일 뿐만 아니라, 햇살과 공기의 차이가 "적당한" 옷 색깔도 달라지게 만든다. 예..

가장 큰 변화

늘 나를 살폈다. 그 에너지가 강하고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남에게 잘 하려 애썼고, 성과나 결과물을 남에게 돌렸다. 살피는 과정도, 남과의 사이도 아팠다. 정직하려 애썼으나 깊은 죄의식과 수치심, 억압된 분노. 소가 무거운 수레를 매고 애쓰는 느낌. 늘 나를 살핀다. 마음 안팎에 어떤 일이든 쓰이는 에너지가 비교적 균일하다. 있는 그대로 살고, 보여지는 그대로를 개의치 않는다. 남에게도 좋은 일일까 묻는다. 그런 것 같은데 대체로 모르겠고 아닐 것 같은 순간도 있다. 알아지면 바꾸고 흔들흔들 나아가지만 방향은 흔들리지 않는다. 누구나 결국은 자신의 반복된 선택을 통해 자신의 참된 목표나 동기를 드러낸다는 사실에 개의치 않는다. 슬렁슬렁, 꾸준히 편안하다.

진짜의 위력

동일한 상황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모두 다르다. 왜 다를 수밖에 없는지 말하려면 인간 존재론 전부가 필요할 것이다. 아무튼 다르다. 가끔은 기가 막힐 정도로. 그에 대한 나의 반응은 둘로 나뉜다. 내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예민하고 치밀한 편이다. 때로는 지독하게 달려든다. 나 자체에 대한 부분은 말하고 싶지 않다. 나를 방어defend하려는 욕구가 없어졌다. 왜 그런가? 겁이 없어졌다. 왜 겁이 안나지? 진짜genuine라서 그렇다. 배우는 것도, 가르치는 것도, 어떤 원칙이나 계획을 말할 때도, 조언이나 배려를 할 때도, 화를 내거나 욕을 할 때도, 나는 진짜로 한다. 그래서 어딘가 특별한 것에 긴장하거나 힘 줄 필요가 없다. 그게 힘pwer이라는 것을 알았다.

단순한 세상

예상을 안 벗어나니 단순하게 느껴진다. 개인의 에고도 그렇고, 집단의 에고도 그렇고. 나도, 치유 공동체도, 박원순 사태도, 아이러니 하게도 밋밋하다. 시끄럽고 모호하고 복잡하고 어려운 것은 내 마음이 그래서 그렇다. 누군가를 위해 애쓰는 것도 내가 애를 쓰는 것이다. 내가 투명하고 단순하면 모든 것이 선명하고 단순해진다. 노자의 뜻을 이렇게 해석해본다 : 위무위爲無爲 - 애쓰지 않을 수 있도록 애써라 만물병작萬物竝作 - 천지만물이 나란히 진행된다

I surrender

지난 주의 대성통곡 이후에 나는 좀더 투명해졌다. 힘이 명료하게 발휘된다. 나의 예슈아께 청하였다. 오늘은 창조주의 에너지를 당신을 통하여 연결하겠다고, 지금 나에게 최고최선을 당신을 통하여 이루어달라고. 에너지적인 작업installation이 속행되었고, 그 뜻을 물으니 성적 정체성을 치유하는 것이었다. 나의 감정적 잔재, 의미없는 심리적-태도적 장치들이 다른 무엇도 아닌, 나 스스로를 여성이라고 인식하는 데서 온다는 사실. 여전히 그러고 있었다는 사실! 여성성은 여자라는 뜻이 아니다. 남성성은 남자라는 뜻이 아니다. 명상 중에 몇몇 순간들이 다시 떠올랐다. 카루나의 관음보살님 - 힐러의 힘과 자세에 대해 언제나 알려주셨고 도우셨으며 울고 있는 나에게 찾아오신 부처님 - 가족의 생로병사를 염려하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