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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천천히 걸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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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일로의 치유와 성장 339

의식주 小考 - 식

- 일반적으로 좋은 음식은 자신의 문화권에서 먹고 자란 음식people's food이다. 무엇이 수퍼 푸드다, 하며 특정 식재료를 흥행몰이 하는 것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과 그 배후에 어떤 의도가 있기 십상이다. 반대도 마찬가지. 무엇이 해롭다, 하는 데 겁을 먹으면 그 자체의 해로움보다 본인의 생각과 감정이 불러일으키는 파괴적인 에너지가 훨씬 큰 해로움을 훨씬 빠른 속도로 불러일으킨다. 예를 들어 "유기농이 좋다"는 생각에 꽂혀서 가족들의 식생활을 완전히 컨트롤 하려는 강박 관념은 해롭다. 대체로 유기농, 가끔은 적당히 느슨한 편이 사람 심리와 몸의 적응력에 좋다. - 식재료가 나에게 오기까지 이동거리가 짧을수록 에너지가 덜 손실된다. 누가 어떻게 키우고 운송하고 판매했느냐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 요..

의식주 小考 - 옷

의식주 역시 내 에너지/의식 상태와 조응한다 - 예전에는 어두운 기본 색과 단조로운 디자인을 입었다. 간혹 파격적인 색상과 디자인이 끼어있었지만, 정신줄 놓은 자유로운 시기로 국한된다. 지금은 색깔과 문양이 다양하고 채도, 명도가 매우 높은 옷들이 많다. - 버리지 않고 오래 두고 입을 옷에 대한 규정이 달라졌다. 전에는 비싼 옷, 언젠가 필요할텐데 싶은 옷들을 옷장 구석에 걸어두었다. 요즘은 옷에 묻어있는 내 감정을 위주로 선택한다. 슬픔, 회한, 미련, 수고로움이 묻어 있는 옷들은 에너지가 축축 쳐지기 때문에 그냥 버린다. - 한국에서 입던 옷들은 여기 남부 캘리포니아에서는 입을 수가 없다. 하던 일occasion의 차이일 뿐만 아니라, 햇살과 공기의 차이가 "적당한" 옷 색깔도 달라지게 만든다. 예..

가장 큰 변화

늘 나를 살폈다. 그 에너지가 강하고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남에게 잘 하려 애썼고, 성과나 결과물을 남에게 돌렸다. 살피는 과정도, 남과의 사이도 아팠다. 정직하려 애썼으나 깊은 죄의식과 수치심, 억압된 분노. 소가 무거운 수레를 매고 애쓰는 느낌. 늘 나를 살핀다. 마음 안팎에 어떤 일이든 쓰이는 에너지가 비교적 균일하다. 있는 그대로 살고, 보여지는 그대로를 개의치 않는다. 남에게도 좋은 일일까 묻는다. 그런 것 같은데 대체로 모르겠고 아닐 것 같은 순간도 있다. 알아지면 바꾸고 흔들흔들 나아가지만 방향은 흔들리지 않는다. 누구나 결국은 자신의 반복된 선택을 통해 자신의 참된 목표나 동기를 드러낸다는 사실에 개의치 않는다. 슬렁슬렁, 꾸준히 편안하다.

진짜의 위력

동일한 상황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모두 다르다. 왜 다를 수밖에 없는지 말하려면 인간 존재론 전부가 필요할 것이다. 아무튼 다르다. 가끔은 기가 막힐 정도로. 그에 대한 나의 반응은 둘로 나뉜다. 내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예민하고 치밀한 편이다. 때로는 지독하게 달려든다. 나 자체에 대한 부분은 말하고 싶지 않다. 나를 방어defend하려는 욕구가 없어졌다. 왜 그런가? 겁이 없어졌다. 왜 겁이 안나지? 진짜genuine라서 그렇다. 배우는 것도, 가르치는 것도, 어떤 원칙이나 계획을 말할 때도, 조언이나 배려를 할 때도, 화를 내거나 욕을 할 때도, 나는 진짜로 한다. 그래서 어딘가 특별한 것에 긴장하거나 힘 줄 필요가 없다. 그게 힘pwer이라는 것을 알았다.

단순한 세상

예상을 안 벗어나니 단순하게 느껴진다. 개인의 에고도 그렇고, 집단의 에고도 그렇고. 나도, 치유 공동체도, 박원순 사태도, 아이러니 하게도 밋밋하다. 시끄럽고 모호하고 복잡하고 어려운 것은 내 마음이 그래서 그렇다. 누군가를 위해 애쓰는 것도 내가 애를 쓰는 것이다. 내가 투명하고 단순하면 모든 것이 선명하고 단순해진다. 노자의 뜻을 이렇게 해석해본다 : 위무위爲無爲 - 애쓰지 않을 수 있도록 애써라 만물병작萬物竝作 - 천지만물이 나란히 진행된다

I surrender

지난 주의 대성통곡 이후에 나는 좀더 투명해졌다. 힘이 명료하게 발휘된다. 나의 예슈아께 청하였다. 오늘은 창조주의 에너지를 당신을 통하여 연결하겠다고, 지금 나에게 최고최선을 당신을 통하여 이루어달라고. 에너지적인 작업installation이 속행되었고, 그 뜻을 물으니 성적 정체성을 치유하는 것이었다. 나의 감정적 잔재, 의미없는 심리적-태도적 장치들이 다른 무엇도 아닌, 나 스스로를 여성이라고 인식하는 데서 온다는 사실. 여전히 그러고 있었다는 사실! 여성성은 여자라는 뜻이 아니다. 남성성은 남자라는 뜻이 아니다. 명상 중에 몇몇 순간들이 다시 떠올랐다. 카루나의 관음보살님 - 힐러의 힘과 자세에 대해 언제나 알려주셨고 도우셨으며 울고 있는 나에게 찾아오신 부처님 - 가족의 생로병사를 염려하는 것이..

way back home

내가 여전히 지구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토록 애통해하는 줄 몰랐다. 프로젝트 팀 마지막 미팅을 마치는 순간 문득 몇 가지 기억을 떠올렸다. 에필로그 삼아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뜻밖에도 책상에 엎드려 큰 소리로 엉엉 울었다. 나는 스스로 영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삶도 아니었다. 그런데 돌이켜 보니 수많은 싸인으로 점철되어 있다. 치유 초기의 힘든 시기에도 여러 번의 기이한 경험들이 있었다. 지금 해석하자면, 빛의 고향으로 귀환해도 될 만큼 내 미션을 마쳤는지, 얼마나 남았는지 알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친절한 답을 들었다. 거의 다 왔다고, 조금만 더 힘을 내라고. 열려 있는 빛의 문을 향해 뛰어들었다가 다리 한 쪽 무릎 아래가 어둠에 걸려 울기도 하고, 영혼의 아름..

무아 vs 창조주

공부가 경지에 오르고 나면 무엇이 있는가 - 무아인가, 창조적 질서인가? 영성가들 사이에서 이는 존재 전체를 건 질문이 된다. 환상을 넘어 참된 것을 구하는 마음이 진실로 삶의 일순위인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그리하여 입증된 문헌들과 사람을 면밀히 사숙하고, 자신의 내적 경험을 가림없이 투명하게 살핀다. 나는 스스로를 영성가라 칭한다. 나 역시 이런 문제가 중요하다는 자기 고백이다. 그런데 무아나 창조주를 논쟁의 영역으로 끌고오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물론 내 삶 전체를 자원으로 하는 숙고와 치열한 공부와 경험이 있다. 나름의 방향을 얻었고, 이제 신발끈 동여매고 또 열심히 나아가는 중이다. 그래서 어떻다는 말인가? 나와 똑같이, 나보다 더 치열하고 진실하게 길을 나아간 동서고금의 사람들이 ..

성장기 트라우마 - 착한 사람 증후군

내가 자존감이 아주 낮다는 것을 치유 과정에서 알았다. 성장기의 경험에서 비롯된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부모님의 욕구 불만을 위로하는 역할을 했다. 이는 동생들을 보호하고 지켜주고 싶다는 열망과 짝을 이룬다. 이런 역할 설정은 아이의 상상일 뿐이다. 어린아이가 약간의 위로는 줄 수 있을지언정 어떻게 어른들의 내면에서 증폭되는 균열과 결핍, 나르시시즘의 블랙홀을 채울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런 아이/내면아이가 설정한 자기 미션은 영원히 도달 불가능하다. 내적으로 언제나 실패하는 사람이라는 자아 관념이 잠재의식에 깊숙이 각인된다. 이는 겉으로 드러나는 자기 이미지와 극심한 충돌을 만들어낸다. 공부 잘해서 좋은 학교를 가더라도, 어디 가서 인정받고 돈도 벌어서 집안에 제법 착한 역할을 하더라도, 이는 자존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