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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천천히 걸어보아요

함께 천천히 걸어보아요

헤일로의 치유와 성장 337

그냥 살어~ 되는 대로 되는 거다

나는 "잘 해왔고 잘 하고 있으며 잘 할 것"이라 믿기로 했다. 인생의 전반기를 지배했던 고통, 안 변할 거라는 절망, 자책, 깊은 수치심, 수많은 반복되는 시행착오들은 내가 무엇을 배워야 하고 배울 수 있는지 알려주는 장대한 학교였다. 왜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는지 이제 받아들인다. 양상은 다르지만 비슷한 "덫"에서 허우적거리는 인간-동료들을 볼 때마다 깊은 고통이 올라온다. 길이 있어도, 손을 내밀어도, 어떤 이유들을 끝없이 돌려막기 하며 안주를 정당화하고 오직 투사하는 에고의 대환장 파티를 마주할 때마다, 깊이 참람하다. 거의 매일. 그럼에도, 나와 그들이 무엇이 달랐겠는가, 자문한다. 이제는 알고도 짐짓 할 뿐이다. 세상은 나의 노력으로 바뀌지 않을 것이며, 단 하나의 인간도 내 힘으로 변화시키지..

풍요란

지난 날을 치유적 목적으로 돌이켜 보면 뚜렷한 패턴 하나가 보인다. 풍요를 내 발로 걷어차고 다니는 모습이다. 돈을 벌기 시작한 열여덟 살부터 내 몫의 풍요가 늘 주어졌다. 경험과 나이가 쌓이면서 일의 역할과 범위도 커졌고 그만큼 기회의 규모도 비례했다. 감사한 인생이다. 그런데 돈의 관점에서 보면 참으로 엉뚱한 선택 혹은 방임, 방치를 거듭했다. 인생이 완전 몰락한 40세 무렵에는 몇 건의 심각한 패착을 연달아 했다. 왜 그랬을까? 그게 내 의식의 총합이다. 풍요란 단순히 좋은 직장이나 잘 나가는 분야에 진입해서 인정받고, 착하고, 성실하고 그런 문제가 아니다. 삶을 균형있게 조화롭게 바라보는 힘과 관계를 운영하는 훈련, 그것이 풍요 의식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아직도 배우는 중이다. 점점 더 ..

신성과 일상의 장면들

새벽에 치유일기 쓰는 동안 "현실reality" "다차원"의 관계에 대해 좀더 세밀하게 배우고 정리함. 일기를 덮고 책을 펼치니 읽고 있던 바로 다음 단락에 이 주제가 나옴. 표현마저 비슷함. 의심쟁이를 가르치는 방법^^ 그 깨우침을 바탕으로 지금 당면하고 있는 일상의 이슈를 바라봄. 갑자기 선택이 분명해짐. 의심이나 망설임이 사라짐. 일기에 "모든 것이 너무 명료하네요everything is so clear"라고 적었다가 바로 이어서 "내가 여러 가지를 명료하게 볼 수 있네요 I can see things clearly"라고 덧붙였다.

두려움, 핵심 무기

어제부터 치유 일기를 쓰는 동안 특이한 현상을 경험했다. 평상시처럼 쭉 써나가는데 갑자기 어떤 이미지와 함께 부정적인 단어가 확 끼어드는 것이다. 그 순간 움찔하며 위축되었는데, 즉시 "두려움의 싸인fear sign"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어제는 희한하네, 넘기다가 오늘 또 같은 경험을 하기에 명상을 하며 숙고해보았다. 최근 몇 달 동안 나 자신에게 느끼는 차이는 자기 확신이 커졌다는 것이다. 의심과 회의, 모호성이 사라졌다기보다 확신의 힘이 그것들을 능가하는prevailing 상태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자기 의심은 인간 에고에 뿌리박힌 멍에인 듯 하다. 나에게는 아킬레스 건이다. 이 부분이 완화되어 힘을 상실하자 에고가 발버둥을 친다. 두려움을 자극하는 것이다. "정말 네가 옳아?" 나 자신을 강화하..

그건 그렇고, 기쁨이

아무 생각 없이 아침 커피를 만드는데 가슴에서 또 기쁨이 번져나온다. 삶의 바탕 감정으로 자리잡은 건가 싶어 행복감이 든다. 그런데 이 원리가 참 묘~하다. 어제는 종일 떡실신 상태였다. 새벽에 공개 워크샵 형태의 치유 명상을 함께 했는데, 정치적으로 민감한 분들이라 논리적으로 진행될 거라는 예상을 깨고 역대급의 길고 강렬한 명상이 이어졌다. 그 에너지가 하루종일 몸을 진동시켰고 치유 과정 특유의 피로감이 강하게 몰려왔다. 몸에 쌓여있던 낡은 감정의 잔재들도 끌려 올라왔다. 감정의 찌끄러기가 흘러나와 퍼지면 순식간에 기분이 달라진다. 누워서 휴식하면서도 뭔가 찜찜했다. 아침에 맑은 정신으로 그 감정을 회고해보니 일생 내내 익숙했던 바로 그것 - 답답하고 화나고 무기력, 좌절, 절망감, 우울, 분노, 피해..

"삼재"도 내 선택

업무 중에 생년월일을 말했는데 상대방이 "선생님 삼재가 끝났네요?"라고 했다. 화면 바깥에서 슬쩍 보다가 좋은 소식^^이라 알려주신 것 같았다. 나이 들수록 더 좋아지고 찾는 이가 많아질 거라는 덕담도 들었다. 삼재. 오랫만에 들어본다. 내 삶을 이해하기 위해 떠돌아다닐 때 사주를 보거나 명리학 강의도 듣곤 했다. 생각해보니 3년간 고생을 하긴 했다. 다만 삼재라는 인식 대신 나 스스로 선택한 계획이라는 생각이 있었을 뿐이다. 2018년에 자영업 장사꾼으로서 목표 삼았던 매출을 달성했다. 미국에 온 지 10년 만이다. 연말에 곰곰 생각했다. 이 상태로 2~3년만 하면 어지간한 집을 장만할 수 있겠구나. 최종 선택은 이 수익 구조를 힐러들에게 줌으로써 공동체의 초석을 놓겠다는 것이었다. 힐링 스쿨의 매출이..

표현되지 않은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늘은 집에서 신경질적으로 내 감정을 폭발했다. 이슈 자체는 그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패턴이 반복되니까 내 안에 자잘한 감정들이 쌓였다. 좋게 좋게 대처하며 차분히 말하는 것만으로는 내 의사나 경계선에 대한 요구가 명확히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가 있다. 상대는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 뭐가 중요하다고 요청하는 건지 알아듣지 못한다. 이래도 되고 저래도 별 상관없다 싶어 손 놓고 있었더니 어떤 일에 타이밍을 놓쳤구나 싶다. 결론을 한두 번 양보 할 수 있더라도 상대가 자기 말을 반복하도록 두는 것도 결과가 좋지 못하다. 화를 내는 것이 때로는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배움의 주기 (Bob Cochran - 페이스북 인용)

The Circle of Learning 배움의 주기 Just about any institution you can think of (science, medicine, religion, etc.) started out with pure intent but have to some extent been coopted by special interests, resulting in todays version being part truth and part narrative.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그 어떠한 제도라도 (과학, 의학, 종교 등) 순수한 의도로 시작했으나 특정한 이해 관계를 어느 정도는 흡수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오늘날 부분적으로는 진실이면서 부분적으로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Sorting tru..

슬픔이, 기쁨이

오늘 아침에 눈뜨면서 느낀 감정은 씁쓸하고 슬픈 맛이었다. 가슴이 약간 철렁. 어제의 기쁨은 하루짜리였나. 외부 상황이 달라진 건 없으니 내 안에 있던 맛이겠다. 그렇다. 삶에 대한 바탕 감정이 비극적이고 비릿했었다. 의식과 에너지의 파동이 상승하면 그 힘에 비례하여 밑바닥에 있는 낮은 파동을 끌어올린다. 전형적인 치유 과정. 위아래 좌우로 엎치락 뒤치락 하면서 확장하고 깊어지고 상승한다. 평화의 힘이 커지는 원동력. 여기까지 자각하고 나자 기쁨이 솟아올랐다. 어제의 그 기쁨이. 치유와 영성은 내적 변화의 속도를 빠르게 해준다. 요즘은 아주 빨라졌다. 삶이 효율적이다.

기쁨

새벽 스케줄이 없는 토요일. 새벽에 눈을 떴는데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 앞으로 몇 시간 동안 뭘 할까? 책을 읽을까, 치유 일기를 쓸까. 누운 채로 뉴스 검색하고 유투브 몇 개 본 다음 이를 닦는데, 가슴 차크라에서 기쁨이 강하게 솟아올랐다. 너무 좋아서 가슴이 뻐근할 정도의 느낌. 이유가 없다. 어제도 일상의 스트레스는 파도쳤으며, 기가 막힌 일들도 하루 걸러 한 건씩 터진다. 그래도, 그런데, 기쁘다. 내면의 신성의 속성 중 하나가 기쁨인가 한다. God Within seems to have the attribute of of J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