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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천천히 걸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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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일로의 치유와 성장 327

나는 누구인가 2 - 친구에게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다큐멘터리 두 편을 보았다 화가 세잔Paul Cezanne과 건축물 바우하우스Bauhaus 과거의 내가 고통을 뛰어넘는 방법을 배우려 뒤지고 다녔던 지식과 예술의 흔적, 미학적 거인들의 그림자를 예기치 않게 재회한 기분이었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그 진부한 이야기들이그 날의 나에게는 새롭고도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젊은 세잔은 당대 미술 세계의 지배적 패러다임 안에서 그것을 카피하려 애썼다그런 다음 제멋대로 튀어나가 버렸다말이 좋아 인상주의 예술 운동이지, 질서 밖으로 걸어나가 세상의 조롱을 받았다 고비마다 그는 엑상 프로방스라는 마을로 되돌아 갔다거기서 생 빅토와르 산을 수십 번 그리고 그리며,볼품없는 작은 산을 마치 숭고한 미학적 이상향이나 되는 듯이 탐색했다 아침에 화실로 건너가 ..

나는 누구인가

잠자리에 누워 누군가를 생각하고 있는데 장미향이 진하게 맡아졌다.나의 마음이 단순하고 순수하게 집중하는 순간, 성모님이 당신의 현존을 알리신 것이다. 나는 종교인이 아니다.그 어떤 종교의 관점에서도 나는 신실하지 않다. "이단" "원시적" "부처님의 정법이 아니다"내 오피스 건물의 어떤 여자는 몇 년이나 나를 째려 보았다 난 그냥 살았다 사는 동안 아무 곳에서나 아무 때나 기도한다 조계사, 월정사, 마곡사에서 예기치 않은 명상에 들어 나조차도 놓치고 있던 나의 심연을 보았고성모상으로부터 환회의 에너지가 쏟아져 내릴 때는 콘크리트 바닥에 무릎을 꿇지 않을 도리가 없었으며예루살렘의 한 교회에서는 오체투지로 엎드려 우는 동안 예수의 말씀 한 구절을 이해했다. 그런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

모든 것은 완벽하게 조율되어 있었다

셰익스피어가 인생은 연극이라는 힌트를 남겼을 때 그는 비유를 한 것이 아니라 거대한 진실을 누설한 것이다. 좋은 대본은 풍성한 디테일과 짜임새가 내내 지속되다가마침내 웅장한 구조를 드러내며 완결된다. 초기에는 환경과 포석이 배치된다. 그것은 캐릭터의 탄생을 정당화 시킨다. 주인공은 문제적 인간이 되어 방황한다.시련이 거듭 닥치고 그때마다 선택을 요구받는다. 반복된 선택이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다시 규정한다.스스로가 내린 실천적 답이 정체성을 만드는 것이다. 그 정체성을 바탕으로 세상과 어울려 산다.엔딩이 해피인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치 않다.어차피 연극 무대에서 주도적 실천을 했고, 배울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스토아 철학자들도 인생에는 대문자 저자Author 혹은 신들gods이 있다고 보았다.나는 그 말..

관세음 - 신성한 무관심

백 년 전 일본에서 시작된 레이키라는 치유법이 대중화 된 계기는 오히려 미국에서 마련되었다. 무엇이 되었든 반 세기가 넘는 동안 꾸준히 발전하면서 한 사회에 뿌리내리는 과정은 아름답고 감동적인 데가 있다. 그 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대목은 백인 크리스찬인 레이키 힐러들이 미지의 신성인 관세음보살의 가이드를 받아들여 카루나 레이키®라는 보다 진화된 형태의 치유법을 체계화 시켰다는 점이다. 이러한 개방성이 그들 스스로에게 국제적인 영향력을 가져다 주었다(국제 레이키 교육 센터 reiki.org 참조). 불교에 문외한이었던 나는 아마도 카루나 레이키® 마스터 과정을 마치고 난 이후부터 관세음보살이라는 존재에 대해 관심이 생겼던 것 같고, 이후 불교 공부로 이어졌다. 그리고 힐러로 일하면서 "관세음觀世音"이라는..

마하 쿤달리니 치유 증상

마하 쿤달리니 호흡법을 다시한번 꼼꼼히 마치자 콧물이 흘렀다. 잠도 잘 오지 않고 심리적인 잔재들도 예리하게 감지된다. 그냥 일어나 앉아 이런저런 생각도 하고 놀기도 하고 일도 한다. 감기가 걸렸나, 오랫만에 걸려본다 싶었는데일상 생활과 스케줄에 맞추어 자동 조정되는 것을 보니 치유 증상이다. 몸은 의식을 가진 지성체다.

예감

20대 때 나는 약간 으쓱하며 말하곤 했다. "균열이 있는 인간을 나는 사랑해. 상처가 없으면 온실의 콩나물처럼 재미가 없더라구." 오늘 아침 커피를 만들다가, 문득 그 시절이 생각나면서 가슴이 싸아 했다. 뭘 알고 어린 날 그런 소리를 지껄였던 걸까. 제 운명이 그리 될 줄도 모른 채. 균열과 아픔이 있는 인간은 그런 사람에게 반응한다. 오직 그런 사람에게만 민감하게 반응한다. 균열과 아픔을 자기 삶에 증폭시킨다는 뜻이다. 다행인 것은, 그것도 끝까지 가니 길이 되더라는 사실이다. 물론 제 스스로 죽음 직전까지 몰려가서 다 내려놓고 돌아보는 세월이 필요했다. 이제는 균열과 아픔을 보듬는 일을 직업적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인생은 공평하다.

신과의 관계 3단 변화

1. 처음에 나는 신이 아니꼬왔다. 미켈란젤로 그림에 나오는 "파란 눈의 나이 든 백인 남자”가 공중에 매달린 채 항상 나에게 화를 내는 것 같았다. 고통스런 내 삶에 자기는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으면서, 외아들을 내세워 아득한 윤리들을 설교했다. 그 훈계를 전하는 사람들이 끼워 넣는 돈 이야기, 벌 주는 이야기가 내 목을 졸라 가슴이 막혀왔다. 내가 뭘 그리 잘못 했는가? 태어난 것 자체가 원죄란다. 이 무슨.당신이 아니래도 난 이미 죽을 것 같거든요?!%^&!@* 2. 누군가 말했다. 그건 종교라고, 신이 아니라.신은 네 안에 있다고 했다.대박 사건! 난 황량한 내 가슴 안에서 신의 흔적을 열심히 찾았다. 울면서. 좀 살만 하다 싶은데, 어라?그걸 알려준 사람이 신의 지위로 서서히 올라서기 시작했다.빌..

신은 참 억울하겠다....

맑시즘은 마르크스가 말한 적이 없다. 그는 단지 병아리를 보고 닭을 예측하듯이, 초기 자본주의를 관찰하며 이 시스템의 문제점을 예측했을 뿐이다. 자본주의의 화신인 미국에서 산 지 10년을 넘어가면서 나는 자주 생각한다.그는 사회적 예언가였구나. 종교주의는 예수나 부처가 말한 적이 없다.그들은 단지 우리가 행복해지는 방법, 신과 참되게 관계 맺는 방법, 개인이 최고의 존엄성을 되찾는 방법을 말했을 뿐이다. 개별적 신성으로서의 인간이 전체로서의 신성을 이토록 오해하게 만드는 종교주의는 예수와 부처가 가장 혐오하고 경계했던 것이다. 나는 이 지상에서 가장 오해 받는 존재가 있다면 신일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