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바디® 힐링 하면서 어센션을!

함께 천천히 걸어보아요

함께 천천히 걸어보아요

헤일로의 치유와 성장 339

친절을 베푸는 방법 - Don't cast your pearls before swine

경전급 텍스트는 내 이해도에 따라 끊임없이 다르게 읽힌다. 높은 수준의 영적 원리를 함축하는 단순한 문장일수록 더 그러하다.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과거의 내가 예수님을 왠지 꺼림칙하게 느끼도록 만든 이유 중의 하나였다. 뭔가 알 것도 같고, 마음 한 구석에서는 '예수님도 사람 차별하시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 같다. 언젠가부터 이 말을 반복해서 음미한다. "Don't cast your pearls before swine." (Matthew 7:6) 영역 성서를 단어 그대로 옮기면 "너의 진주를 돼지 앞에 흩뿌려놓지 말라" 정도 되겠다. 1. 귀한 것이란 무엇인가? "너의 진주들YOUR pearls"이라고 표현했다. 네 눈에 좋아보여서 네가 쥐고 있는 것이라는 뜻이겠다. "나는 친절과 헌..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낯설고 중요한 전환기에서 몹시 오래도록 생각한다. 실은 처음부터 직관적으로 안다. 그런데 자신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수십 번, 아마 백 번쯤 두루두루 확인한 뒤에 답을 정한다. 그 과정에 남의 말, 정보 많이 듣는다. 갈 길은 이미 선택한 상태다. 자기 확신을 키우는 과정일 뿐이다. 결정을 내리면 뒤돌아보지 않는다. 오래 걸리는 단점, 견고한 장점. 전형적 좌뇌형. 이번에도 시국이 시국인 만큼 또 한번 그런 과정을 거쳤다고 생각했다. 뒤돌아보거나 되짚지 않아도 되는 견고함에 이른 느낌. 그건 맞다. 예수의 해석은 약간 맥락이 다르다. 1. 자기 밖의 관점으로 나갔다가 돌아오는 습관이라고. 그것을 필요로 했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없음을 스스로 확인했다고. 2. 책에 관해서는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 있..

무소유론을 돌아봄

종교-영성-치유-봉사-진보 쪽 사람들이 돈을 많이 가지면 안된다는 "무소유주의"에 동의도 신뢰도 하지 않지만, 원래의 무소유 개념에는 뜻이 있으리라 가끔씩 숙고해 본다. 물질 세계가 허상이라면 있음만큼이나 없음도 허상일 터. 없음에 정신적, 영적 의미를 부여 하는 것은 이원론의 또 다른 극단이겠다. 무언가를 소유하는가, 소유하지 않는가를 한 존재의 정신 세계와 진실성의 근거로 바라본다면, 핵심이 물질 그 자체가 된다. 소유론도 무소유론도 기반이 똑같아지는 것이니, 양 쪽 다 인간의 탐욕이나 생존 불안을 다루는 데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만약 성인들이 무소유를 말했다면 무엇을 경계하라고 했던 것일까? 물질에 대한 착attachment을 갖지 말라는 해석이 내게는 가장 설득력 있게 들린다. 착은 심리적 현상..

힐러의 탄생

프로가 된다는 것은 자신이 선택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훈련을 긴 시간 거치지 않고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된 사람이 있을까? 여기에 불법적인 요소를 넘나들거나 포장이 심하면 프로 양아치가 되겠지. 내가 선택한 삶의 목적은 어센션의 여정을 가는 것이고, 그 방법론이 힐링을 하면서 힐러를 길러내는 길이다. 나는 점차 힐러를 길러내는 데 물불을 가리지 않게 되었다. 포장하자면 사람과 상황에 맞는 다양한 방편을 쓰는,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따뜻한 공감, 북돋움, 한 줄기 빛, 삶의 기술이나 비전, 헌신 등의 자질을 쓴다. 여기까지는 치유가의 기본적 소양이다. 마스터 힐러 혹은 영성가로 다듬는 작업은 훨씬 다른 영역으로 진입한다. 물론 당사자가 진심으로 원하는가에..

일기 - 뭣이 중허지?

나는 잘 지낸다. 뭔가 열심히 하는 편이면서 고통이나 의문 때문에 힘든 건 별로 없으니까 내 기준에 잘 지내는 것이다. 가끔은 나에게 진짜 중요한 것이 뭔지 자문한다. 흔히 생각하는 중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대입해보기도 한다. 중요한 것 맞다. 그것들 중에 내가 무엇이라도 확실하게 쥐고 있거나 보장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문제인가? 어떤 것들은 문제다. 문제가 고통인가? 이 부분이 스스로에게 종종 질문을 하게 되는 지점이다. 고통스럽지가 않은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들은 이해하고 대처하고 성장하고 변화하는 데 쓰면 된다. 그러라고, 그래야 해서 생기는 게 문제의 원래 존재 가치다. 쉬운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고통스럽게 어려운 것도 아니다. 내가 팔자 좋아 그런가? 그런 지는 모르겠으나 그렇다면 좋은 일이다..

시간, 기억

시간이 과거-현재-미래로 일직선처럼 흐른다는 생각은 3차원 공간에나 해당되는 일이라고, 물리학과 영성 쪽에서 똑같이 말한다. 그럼에도 일상 속에서 실감하기는 어렵다. 지동설을 알지만 여전히 하늘이 도는 듯 보이듯이.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에 현존하는 것을 실감하는 방법이 몇 가지 있다. 훈련된 명상, 최면 그리고 기억이다. 몇 십년 전의 어떤 기억이 어제 일보다 선명한 경우가 흔하다. 거기에 감정이 결합되어 있으면 더 그렇다. 기억의 영역을 지배하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감정이다. 바꿔 말하면, 기억 혹은 감정의 영역에서 시간은 과거-현재-미래가 공존하며 외부의 단서 혹은 내부의 생각을 통해 이 데이터들을 접속하고 검색한다. 그 범위는 이번 생에 국한되지 않는다. 때로는 전생의 기억과 감정, 육체적 반..

이집트 사자의 서

이 텍스트는 치유 여정에서 여전히 종종 생각하곤 한다. 죽음의 문 앞에서 심장을 저울 한 쪽에 올려놓고 다른 쪽에 새의 깃털을 올린다. 저울이 기울면 영원한 생명을 허락받지 못한다. 심장(내 용어로는 4바디를 조율하는 중심)에 무거움을 남기지 말라. 어센션에 방해가 된다, 는 뜻일 터. 의식적인 부분, 습관은 말할 것도 없고, 잠재의식도 살펴야 함을 또 절감했다. 잠재의식은 언어와 심리 구조를 통해 드러난다. 전생의 강렬한 기억/트라우마가 현생의 특수한 기질이나 태도, 심리적 경향성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충분히 봤고 해소했다고 생각했는데, 남아 있는 부분이 작용하여 내 눈 앞에 사람을 데려다 놨다. 기겁할 일이다. 물론 전생은 현생과 1대 1로 등치되지 않는다. 상위자아(들)과 하위자아(들)의 길고 복잡..

공자

마스터들은 하고 싶은 말씀, 연결하고 싶은 욕구가 많으시다. 는 A와 동일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부분 변주를 하리라 느긋해 있던 나는 새벽 명상에 자신을 드러내신 공자님의 요청에 식겁했다. 프로그램 주제를 "습習"으로 하라고. 엥? 한 글자로 하루 워크샵을? 예수님은 "잘 알지?' 하시더니 내 어깨쪽 가슴에 양손을 얹으시고 부드럽게 몸을 정리하며 위로하셨다. 이른 아침 세션까지 있으니 남은 시간은 불과 1시간. 오전 프로그램은 어찌어찌 준비했는데 그 이후는 "네가 알 수 없다"고 했다. 하루는 언제나처럼 잘 흘러갔다. 밤 10시에 나눔을 하며 알았다. 참석자 중 한 사람은 중국인으로 공자에 매우 익숙한데 한국어와 한국살이에 애써 적응했고, 또 한 사람은 어린 시절 무서움에 떨 때마다 엄마가 한시를 외우라 ..

진리, ghost

자신을 위로하고 강화하고 관계를 보듬기 위해 사용한 방편들, 우리는 그것을 진리라 부른다. 그래서 누군가가 거칠게 주장할지라도 그의 진리를 축하하고 축복하게 된다. 그가 위로받고 자신을 강화하고 관계를 보듬고 있다는 뜻이므로. 나 또한 그러하다. 내 방편을 "길道"이라 이름 붙인다. 그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의 시간. 그녀들은 잘 지낸다. 자신이 흔들릴 것이라는 것조차 담담히, 명료하게 알고 있다. 오늘의 나는 그녀들을 위하여 할 일이 많지 않았다. 경험으로 얻은 지혜를 느긋이 나누고 눈빛을 번뜩이며 경청하는 그녀들과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 역설적으로 나는 유리되었다. 아름다운 세상도 환상인 건 마찬가지다. 느긋하고 담담한 환상을 바라보는 내가 미묘하게 머무르며 미묘하게 속하지 않는 느낌이었다.